세계여행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지순례, 올드시티 거닐기

한솔마을 2020. 4. 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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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울타리안에 서로 다른 4개의 성격이 공존하는 곳, 이스라엘 예루살렘 올드시티를 걸어보기로 했다.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은 '준비된 평화'이지만 오랫동안 분쟁과 대립에 휩싸여 있는 아이러니한 지역이다.

 

예루살렘 구 시가지와 성벽

예루살렘 올드시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각기 성지라고 주장한다. 총 면적이 1km2에 불과한 지역이지만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무슬림, 기독교인이 4등분하여 공존한다.

숙소는 다마스쿠스 게이트 바로 길 건너편이었기 때문에 이동하기 수월했다.

 

 

내가 이용한 다마스쿠스게이트의 전경. 올드시티를 둘러싼 예루살렘 성벽은 전체길이가 약 4km이다. 기원전 10세기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던 당시에도 이곳에는 성벽이 있었다고 한다. 이 후 수많은 증축과 파괴, 재건과정을 되풀이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의 성벽은 16세기 오스만투르크의 슐레이만 대제가 쌓은 것이다. 평균 높이는 17미터, 망루 34개, 시온문, 사자문, 헤롯문 등 총 8개의 출입문이 있다.

 

 

 

문을 통과하면 양쪽으로 상점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시장인 것 같다. 좁은 통로를 따라 전세계의 성지순례자, 여행자들이 지나다닌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답게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

 

신기한건 모든 상점들이 옛 모습의 건축형태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벽내부의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진 확실하지 않다. 다만, 공간의 크기와 재료로 꽤나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추측해 볼 뿐이다.

어쨌거나 옛것과 현재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정신없이 성내를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솔직히 이게 뭘 의미하는진 모르겠다. 다만 저 옆의 샛길을 통해 거룩한 무덤의 성당으로 들어갔으니 무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해본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성당이 하나 나온다. 초입에는 십자가 문양이 있는데, 이집트 신전에서 보았던 문양과 똑같다.

고대 이집트 신전을 훼손한 장본인들인가 보다. 브라질 친구 조지가 손오브비취라고 했었는데 얘네였구나

 

 

도면으로 봐서는 북쪽의 프란시스코 성당을 통해 거룩한 무덤성당으로 입장한 것 같다.

거룩한 무덤성당은 수세기 동안 파손과 복원을 반복했다고 한다. 도면은 현재의 도면이다.

관광객들의 주출입은 남쪽에서 이루어진다.

 

 

주출입구의 모습. 우측 상단의 창문부분이 예수가 옷 벗김을 당한 장소라고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장소. 뒤편에는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지는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

그 앞에는 기름 부음의 바위(성유석)이 있다.

 

 

 

 

주 출입구로 입장해서 좌측으로 돌면 나오는 부활의 로툰다. 그 아래에 있는 건물은 이디큘이라고 부른다.

이디큘은 두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 방은 천사의 돌이 있다. 예수의 시신이 안치된 다음 설치되었다고 전해진다.

두번째방은 바로 예수의 무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하고자 줄을 서서 기다린다.

분위기는 엄숙하여 내실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예수의 무덤으로 들어가서 기도를 올리고 나올때는 뒷걸음질로 나와야한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나 또한 그렇게 하였다.

 

 

 

이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거룩한 감옥은 아닌 것 같고.. 지나가던 행인의 말로는 저 작은 동굴이 누군가의 무덤이었다고 한다. 두개인걸로 봐선...두명의 강도것인가?

이럴때는 가이드가 필요한 것 같다. 나중에 알아보니 자페게이트(크리스챤 지구의 출입문)에 관광정보센터가 있었다.

아마 그곳에서 가이드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가이드북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장소. 십자가를 박았던 구멍을 만져볼 수 있다.

 

 

거룩한 무덤 성당을 나와 걷다보니 Jaffa gate에 당도했다. 출입문 근처에 관광정보센터가 있었으나 내가 갔을 떈 이미 영업종료.

근처에는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들도 있었다. 여기서 페트라 하루 코스가 300달러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좋은 것은 질척거리지 않는 다는 것. 이집트에서는 고민하는 척하면서 나가려면 물고뜯고 난리가 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생각해보고 다시오겠다고 말하면 "난 언제나 여기있어 언제든지 와^^" 이러고 굿바이다..하......이게 정상이지

 

자파게이트 근처에는 데이비드 타워 박물관이 있었다. 입장료가 50케셀이었던걸로 기억한다. 2만원이 넘는 입장료여서 패스

 

 

 

자파게이트를 지나 다시 성을 휘젓다가 아르메니안 구역에 들어섰다. 아르메니안들은 대학살을 피해 이 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 이 정보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얻은 정보이므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이 어째서 예루살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성 구석구석에는 아르메니안들의 대학살을 알리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이들의 구역은 다른 구역에 비해 상당히 차분한 분위기 였으나, 그들 특유의 문화를 여과없이 볼 수 있었다.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

1915년 4월 24일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을 집단 살해한 사건으로, 아르메니아 홀로코스트(Holocaust)라고도 한다. 15~16세기 이후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무슬림으로 개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종교인 아르메니아 정교를 유지하였다.

아르메니아인의 학살은 크게 두 차례 발생하였다. 1860~70년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투르크인의 통치와 이슬람 세계의 통치에서 벗어난 아르메니아인의 독립국가 조성 계획을 세우고, 아르메니아 독립 운동(Armenian national liberation movement)를 진행하였다. 이에 오스만 터키 정부는 1894~96년에 걸쳐 하미디안 학살(Hamidian Genocide)을 진행하였다. 당시 희생자의 수는 약 1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규모 학살 사건 이후에도 아르메니아인들의 독립 운동이 진행되었고, 1909년 3월 31일~4월 13일 사이 2차로 아다나 학살(Adana Genocide)이 발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4월 24일, 250여 명의 아르메니아인 지도자를 체포하여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연행한 후 사형을 집행하였다. 이를 필두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진행되었는데, 이때 희생된 희생자 수가 최소 80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와 더불어 오스만 제국에 거주하던 아시리아인 그리스인들도 희생의 대상이되었다.

희생자는 땅에 매장하거나 화장, 수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이 알려지자 전 세계에서 터키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을 돕기위한 국제 원조가 실시되었고, 아르메니아인을 돕기 위한 특별 기구가 수립되어 학살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메니아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기독교적 역사에서는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나보다

 

 

 

 

다음으로 통곡의 벽을 찾아가는 길. 성 내부는 미로처럼 얽혀 있고, 동선의 구분이 쉽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골목길과 같은 느낌. 평면적으로 꼬일 뿐만 아니라 상,하로 얽히는 입체적인 동선은 움직이는 하울의 성같은 느낌이다. 유럽의 구시가지가 모두 이런 느낌일지는 모르겠다.

 

 

 

통곡의 벽(western wall)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전경. 수많은 사람들이 벽을 향해 서 있다. 벽 너머로 보이는 금빛의 이슬람 성전이 유대교와 대조를 이루며 흥미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저 벽 너머에는 이슬람교의 성지, 템플 마운트와 바위성전이 있다. 지금은 라마단 기간이라서 관광객의 입장객이 허용되지 않아 먼 발치에서만 바라봐야 했다.

 

예루살렘이 최근까지도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저 성전때문이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원인 성지 - 예루살렘 성전 템플마운트

아랍어로 하람 알 샤리프, 영어로는 템플마운트라고 불리는 이 사원은 사원이 세워진 언덕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이슬람구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스림들에겐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한 바위사원이, 유대인들에겐 솔로몬이 세운 최초의 성전이, 기독교인들에게 예수가 못박혀 죽은뒤 부활한 성분묘교회가 있다.

 

통곡의 벽으로 가까이 가보았다.

 

 

통곡의 벽은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어 입장한다. 정확한 이유는 유대교가 아니므로 잘 모르겠다..

이 통곡의 벽이 유대인들의 성지가 된 이유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1. 예수가 죽은 뒤 로마인들의 침략에 의해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했는데, 이를 지켜본 성벽이 밤마다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

2.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는데, 로마군에 의해 짓밟힐 당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쪽 성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성지가 파괴된 슬픔에 성벽에 대고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한 것 같다. 같은 장소에 두 종교가 맞물리니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사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는 뿌리가 같다고 한다.

다만 서로 자기가 정통이라고 믿는 것일 뿐

 

 

유대교 기독교 이스람교의 차이

예수에 대한 관점 세 종교의 가장 큰 차이는 ‘예수에 대한 관점’에 있다. 이들 세 종교 모두 문명의 4대 발상지 중 하나인 유프라테스 및 티그리스 강이 있는 중동에 뿌리를 도고 있으며 아브라함이라는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예수를 삼위일체설에 입각해 하느님의 아들이자 신이라고 믿는 반면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단지 하느님이 보낸 선지자(예언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한다.

 

어쨌거나 예루살렘 여행은 내게 세계사를 배워나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나는 예루살렘의 밤풍경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걸었던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라마단 기간이라 알 아크사 모스크에 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다만 이슬람교가 예수와 관련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배운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그리스로 갈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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